의심의 시대를 살아가는 믿음

욥기 23:1-17


우리 시대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먹고 잘 사는데, 정작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어려움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채 그저 여가활동의 일부로 습관적인 종교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 극단까지는 가지는 않아도, ‘하나님을 믿어도 여전히 고난이 있고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면 굳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이유가 뭔가라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이런 회의적 시각에서 욥을 본다면, 욥은 하나님께 신실함을 지켜야 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욥의 부인이 악하게 쏟아낸 말처럼 하나님을 욕하고 죽는것이 그의 유일한 선택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며, 그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하시고, 그의 기도에 귀를 닫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기다리며 하나님께 신실함을 지킵니다. 항변하고, 불평하고, 자신의 결백과 불의한 현실을 하나님 앞에 호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결코 저버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욥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지혜이며 위로입니다.

 

믿음은 아무런 질문도, 불평도, 항변도 하지 않는 고요하고 정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혼란스럽고 흔들리며 항변하고 질문하는 가운데서도 인내로 버티며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것입니다. 욥은 지금까지 자신과 동행하시고 자신의 기도를 들으셨던 그 하나님을 믿고 서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 정하신 때에 그 분의 공의를 베푸실 하나님을 믿고 기다립니다. 지금은 비록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자신이 분명히 알고 있는 그 하나님은 침묵 너머에서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것이 믿는 것보다 훨씬 쉬운 선택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누구도 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믿기 때문에 설 수 있고, 그 믿음에 의지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회의와 의심은 우리를 표류하게 만들지만, 믿음은 우리 영혼에 든든한 닻을 내리게 합니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믿고 서 있습니까. 무엇을 믿고 한걸음씩 내딛고 있습니까.


배준완 목사


QT묵상집 <복있는사람> 2017년 5-6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필자의 허락없는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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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Lynn Lin 출처 https://flic.kr/p/7BNtNL 


안식일: 마음, 생각, 힘을 다해 하나님 사랑하기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이고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과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우리 몸을 사랑하듯 이웃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도덕적으로 실패하고 모든 것이 뒤틀리고 꼬이는 근본 원인은 바로 율법의 첫 번째 요구, 하나님 사랑에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울까요. 물론, 교회에 와서 찬양하고 예배드리면서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 마음과 힘과 뜻과 삶을 전부 드리는 신실하고 한결같은 사랑은 못합니다. 아니,안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에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기 때문에, 우리는 불신앙과 우상숭배를 공기처럼 흡입하며 살아갑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물질문명의 풍요와 그것이 조장하는 탐욕의 문화는 모든 진정한 풍요와 아름다움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가려버립니다. 과학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의 법칙만으로 세상이 창조되고 유지되는 것처럼 우리의 사고를 지배합니다. 우리는 ‘바람을 잡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