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식탁 구원의 이야기

출애굽기 12:1-42


Exodus Now and Then( 9) : 구원의 식탁, 구원의 이야기


이야기는 우리의 정체성과 삶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8.15광복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듯이,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유월절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만에 이집트를 탈출해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이제 더 이상의 고된 노역도, 생존을 위협하는 파라오의 압제와 공포정치도 없습니다.  완전한 자유민으로서, 자신을 노예에서 해방시키신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백성으로 새 출발을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유월절은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식탁 자리입니다. 그 식탁 자리에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베푸셨던 구원의 이야기를 자녀들에게 들려줍니다. 매년 돌아오는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 들었던 구원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형성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숱한 민족적 고난을 견디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유월절 이야기의 절정은 바로 어린양의 대속의 죽음입니다. 첫 유월절 만찬이 시작된 그날 밤, 이집트에 죽음의 재앙이 닥쳤습니다. 하나님이 죽음의 사자를 보내 이집트의 모든 처음 난 것, 신분고하 상관없이 심지어 짐승들의 처음 난 것 까지 치셨습니다.  이집트의 모든 집에 곡성이 들리지 않은 집이 없었습니다. 태양신의 아들이라 자부하던 파라오도 자신의 장자를 잃었습니다. 죽음의 권세 앞에 철저하게 무력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고 있는 집은 죽음의 재앙이 넘어갔습니다(pass over). 어린양이 대신 피를 흘렸다는 증거로 그 피가 집 문 좌우 기둥과 인방에 발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유월절 이야기는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는 중요한 모티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셨고, 자신의 죽음이 모든 백성을  위한 대속의 죽음이 될 것을 아셨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음의 재앙에서 건진 것처럼,  예수님은 온 민족과 열방 가운데서 불러낸 자신의 백성을 죽음에서 건지셨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이 파라오의 압제에서 해방된 것처럼,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는 죄와 악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 백성이 자유를 얻어 하나님을 예배하게 된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할 자유를 얻습니다. 유월절 새벽에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이 부활의 아침에 열어주신 영원한 소망과 약속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초대받은 구원의 이야기며, 그 이야기를 믿음으로 '먹고 마시는' 자리가 주님의 성찬 식탁입니다. 유월절 이야기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원 이야기로 이어진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님의 구원 이야기가 오늘 내 삶의 이야기로 이어지기 원하십니다. 내 삶의 이야기가 더 큰 참된 이야기의 일부가 될 때, 비로소 아름답고, 의미 있고, 풍성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누구의 식탁에 참여해서, 어떤 이야기를 먹고 마시고 있습니까


배준완 목사 (일원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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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마음, 생각, 힘을 다해 하나님 사랑하기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이고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과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우리 몸을 사랑하듯 이웃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도덕적으로 실패하고 모든 것이 뒤틀리고 꼬이는 근본 원인은 바로 율법의 첫 번째 요구, 하나님 사랑에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울까요. 물론, 교회에 와서 찬양하고 예배드리면서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 마음과 힘과 뜻과 삶을 전부 드리는 신실하고 한결같은 사랑은 못합니다. 아니,안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에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기 때문에, 우리는 불신앙과 우상숭배를 공기처럼 흡입하며 살아갑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물질문명의 풍요와 그것이 조장하는 탐욕의 문화는 모든 진정한 풍요와 아름다움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가려버립니다. 과학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의 법칙만으로 세상이 창조되고 유지되는 것처럼 우리의 사고를 지배합니다. 우리는 ‘바람을 잡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