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애가를 불러야 할 이유

이사야 59:1-21


아일랜드 출신의 락그룹 U2의 리더 보노(Bono)는 공공연하게 자신의 크리스천 신앙을 밝히지만, 한편으로는 교회에 대해 매우 비판적입니다. 특히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자주 비난합니다. 언젠가 보노가 신학자 유진 피터슨과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보노의 질문이, 왜 오늘날 교회가 부르는 노래들은 시편의 기도들처럼 진솔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시편에는 수많은 애가와 탄식과, 절망의 노래들이 가득한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애가를 찾아보기도 어렵고, 현실에 대한 치열하고 정직한 고민이 담긴 노래를 듣기 어렵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오늘 이사야서 말씀은 절망의 노래에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현실이 정의와 공의가 없어 캄캄한 암흑 속을 헤매는 것 같고, 사람들이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실제로는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고, 정직과 성실과 정의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의인이 도리어 손해를 보고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탄식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모두 어긋날 대로 어긋나 있습니다. 곰 같이 부르짖고 비둘기 같이 울면서 회복을 바라보지만 곪아져버린 내부에서 회복의 힘이 없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도움의 손길을 기다려보자니, 악한 이방제국들의 세력다툼 속에 그 어디에서도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 애가가 희망적인 이유는 적어도 이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직시하고,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문제가 곪을 대로 곪아도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 문제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탄식 공동체는 개인적인 죄뿐 아니라, 공동체적인 죄까지 정직하게 대면하며 낱낱이 하나님 앞에 자백합니다. 사실, 공동체적인 죄는 비난의 화살을 다른 데로 돌리기가 더 쉽습니다. 시대가 악해서 그렇다고, 정치가들과 지도자들과 목사들이 문제라고, 요즘 아이들이 문제라고, 어른들이 문제라고, 혀를 차거나 핏대를 올리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을 눈물로 끌어안고 기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이 아무리 소수라도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해 닫힌 하늘 문을 여시고, 절망적인 현실 속에 적극 개입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15-16).  아니, 하나님이 이제까지는 보지 않으셨단 말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항상 불꽃같은 눈으로 모든 것을 살피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그 분은 오래 동안 침묵하셨습니다. 그 모든 일이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해서 스스로 선택한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자신의 능력을 힘입고 구원의 손길을 베푸시기 위해 공의의 갑옷과 구원의 투구로 무장해 찾아오실 것입니다. 바로, 절망과 탄식과 회개의 노래를 눈물로 부르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약속과 도전을 동시에 줍니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 식어진 믿음과 냉냉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겠는가, 시대의 아픔을 짊어지고 눈물로 기도하며 희망을 기다리겠는가라는 도전입니다. 보노(Bono)는 교인들을 향해 당신의 깨어진 가정과 악화된 부부관계와, 잃어버린 자녀들로 인해 정직하게 노래하라고 했습니다. 무너져가는 현실과 정직하게 대면해서 아파하며 기도할 때, 그 절망과 어둠의 끝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희망의 노래를 부르기 이전에, 정직한 슬픔과 절망의 노래를 먼저 불러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배준완 목사


2017년 마지막 금요심야기도회(12월 29일)에서 나눈 말씀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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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매일묵상 3] 금식, 저항과 소망의 표현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눅2:36-37) 여선지자 안나는 ‘금식과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안나는 결혼한지 7년만에 과부가 되어서, 무려 84년을 과부로 지냈습니다(원문에 따르면 이 번역이 더 정확합니다). 당시 관습대로 안나가 12살쯤에 결혼을 했다고 가정하면, 나이가 103살입니다. 그런데도“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다”고 합니다. 안나 선지자는 평생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금식과 기도로 살았던 분입니다.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다이어트 때문에 밥을 굶는 것은 가능해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금식한다는 것이 상상이 잘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금식은 ‘지금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라는 저항의 상징이었습니다. 안나가 밤낮 금식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이방인에게 압제받는 현실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 의미였습니다. 동시에, 이런 상황 속에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