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너머에 하나님이 계신다!

잠언 21:1-12



클래식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으로 꼽히는 베토벤 9번 교향곡은 연말연시 음악회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래퍼토리입니다. 연초에 유투브에서 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합창> 교향곡을 감상하는데, 아름답고 웅장한 환희의 노래 중 반복되는 한 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Brüder, über'm Sternenzelt 형제여! 별이 반짝이는 저 높은 곳에

Muß ein lieber Vater wohnen 사랑하는 아버지가 살아계시니...


왜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들으며 다난했던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의 희망을 다짐하는지, 이 가사에서 답을 찾아봅니다. 우리 삶이 아무리 어렵고 복잡하고 막막해도, 저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보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을 믿을 때, 삶은 여전히 희망이 있고 기뻐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잠언의 지혜는 하나님의 계심에 대한 견고한 믿음과 통찰을 곳곳에서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왕의 마음도 수로의 물처럼 그 분의 뜻대로 움직이신다(21:1), 사람의 판단은 자기중심적으로 왜곡되어 있지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최종적으로 판단하신다(2), 의로우신 하나님은 악인들의 계획이 결국에는 서지 못하게 하신다(12)....’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믿지 않는 편이 훨씬 더 솔직하고 속 편하고 합리적인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설사 하나님이 계신다 해도, 세상이 이렇게 엉망인데 그 하나님이 도대체 뭘 하시느냐는 것이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잠언의 지혜는 거꾸로 말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엉망인데도 여전히 질서가 유지되고,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보상을 받고, 악한 계획이 성공하기보다 실패할 경우가 더 많은 것이 놀랍지 않느냐? 하나님이 정말 손을 놓고 있다면, 과연 깨어진 이 세상에 이토록 수많은 기쁨의 파편들이 빛나고 있을지 생각해 보라! ' 

 

하나님이 저 너머에 계신다!”는 믿음보다 우리 삶을 더 견고하게 받쳐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 믿음이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마주할 용기를 줍니다. 아무리 오늘이 힘겹고 내일이 불안하고 염려 되어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굳게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힘찬 환희의 송가를 부르며 소망의 자리로 나아갈 것입니다.


배준완 목사


QT묵상집 <복있는사람> 2018년 5-6월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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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애가를 불러야 할 이유 아일랜드 출신의 락그룹 U2의 리더 보노(Bono)는 공공연하게 자신의 크리스천 신앙을 밝히지만, 한편으로는 교회에 대해 매우 비판적입니다. 특히 그는 그리스도인들의‘위선적’인 모습을 자주 비난합니다. 언젠가 보노가 신학자 유진 피터슨과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보노의 질문이, 왜 오늘날 교회가 부르는 노래들은 시편의 기도들처럼 진솔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시편에는 수많은 애가와 탄식과, 절망의 노래들이 가득한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애가를 찾아보기도 어렵고, 현실에 대한 치열하고 정직한 고민이 담긴 노래를 듣기 어렵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오늘 이사야서 말씀은 절망의 노래에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현실이 정의와 공의가 없어 캄캄한 암흑 속을 헤매는 것 같고, 사람들이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실제로는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고, 정직과 성실과 정의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의인이 도리어 손해를 보고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탄식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모두 어긋날 대로 어긋나 있습니다. 곰 같이 부르짖고 비둘기 같이 울면서 회복을 바라보지만 곪아져버린 내부에서 회복의 힘이 없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도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