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눅2:36-37) 여선지자 안나는 ‘금식과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안나는 결혼한지 7년만에 과부가 되어서, 무려 84년을 과부로 지냈습니다(원문에 따르면 이 번역이 더 정확합니다). 당시 관습대로 안나가 12살쯤에 결혼을 했다고 가정하면, 나이가 103살입니다. 그런데도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다”고 합니다. 안나 선지자는 평생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금식과 기도로 살았던 분입니다.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다이어트 때문에 밥을 굶는 것은 가능해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금식한다는 것이 상상이 잘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금식은 ‘지금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라는 저항의 상징이었습니다. 안나가 밤낮 금식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이방인에게 압제받는 현실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 의미였습니다. 동시에, 이런 상황 속에 하나
성경 읽기 마 1: 18-25 복음의 시작에 나오는 인물은 뜻밖에도 혼돈과 두려움과 의심에 빠진 한 남자,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약혼자인 마리아의 혼전임신사실을 알고, 큰 충격과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마리아는 부정한 여인으로 돌에 맞아 죽을 처지입니다. 물론, 마리아는 자신이 아이를 잉태할 것을 천사가 알려주었고 성령의 능력으로 이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요셉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요셉은 의심과 혼돈 속에 고뇌합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지키려면 조용히 파혼하는 수 밖에 없겠다고 거의 결심한 상태입니다. 그 때 그는 꿈속에서 천사를 만납니다. 마리아의 말이 사실이고, 그 아기는 이스라엘의 구원자, 메시야가 되실 것이라는 겁니다! 꿈에서 깬 요셉은 천사의 말대로 마리아를 데려와 그녀와 결혼합니다. 요셉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혼돈과 두려움 속에서도 천사의 말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는 겸손히, 작은 결단의 걸음을 내딛습니다. 다 알 수 없지만, 받아들이기도 힘들지만, 하나님이 그 분의 신실하신 뜻을 이루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 3:19)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4)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 90:10) Q1. 우리는 ‘먼지(Dust)’ 입니다. 먼지에서 왔고, 먼지로 돌아가며, 무너지기 쉽고, 불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릴 존재일 뿐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킵니까? Q2. 우리의 ‘먼지됨’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뿌리 깊은 교만과 이기심, 질주본능과 탐욕에 어떤 ‘효과’를 줍니까?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사 64:8)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전 3:1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Q3. 하나님은 ‘먼지’에 불과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며, 어떤 계획을 품고 계십니까? Q4. 우리는 먼지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잠언이 말하는 지혜의 중요한 요소는 ‘훈련(Discipline)’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끊임없이 훈계를 받고 자신을 훈련해서 계속 성장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훈계에 귀를 닫고 자신의 고집과 나쁜 습관을 방치해서 성장이 멈추고 퇴보합니다. 지혜의 길은 어렵고 자기를 꺽어야하고, 많은 인내가 필요하지만, 미련한 길은 노력할 필요 없이 그냥 내키는 대로 살면 됩니다. 하지만누가 굳이 어려운 길을 애써 찾아가려고 할까요? 지혜가 멀리 있지 않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이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훈련이 자신의 영혼과 삶을 성장시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요. 많은 사람들이 힘든 훈련을 거치지 않아도 인생을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훈련을 되도록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편한 길이란 없고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훈련이 필수라는 것을 인정하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훈련의 과정을 즐겁게 잘 받을 것인가를 찾게 되니까요. “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한다(15)”고 말씀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즐거운 마음이 있다면, 고되고 어려운 훈련도 축제
사순절(Lent)은 교회력에서 부활절을 준비하는 40일을 말합니다.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부터 시작해서 총 7주간을 지키는데, 주일은 작은 부활절이기에 제외합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이 기간동안 예비신자들이 부활절 아침에 있을 세례를 위해 준비하며 영적인 훈련에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일반 신자들도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동참하는 참회의 기간, 영적인 성장을 위한 훈련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사순절 기간의 가장 대표적인 영적 훈련에는 금식, 참회, 절제와 금욕, 매일 묵상과 예배 등이 있습니다. 금식에는 다양한 형태의 '금욕' 훈련이 포함되는데요, 북미의 교인들이 많이 실행하는 것은 초코렛과 같이 달콤한 디저트를 끊는 다이어트(?)입니다. 설탕이 들어간 단 음식은 삶의 '즐거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호품인데, 이러한 즐거움을 일시적으로 끊음으로서 자기절제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7주전 수요일부터 시작되는데, 이 날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라고 합니다. 왜 '재(Ash)'라는 이름을 붙였을까요? 재는 인간이 먼지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즉 우리의 뿌리깊은 죄성과 연약함, 필멸성을 기억하라는
클래식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으로 꼽히는 베토벤 9번 교향곡은 연말연시 음악회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래퍼토리입니다. 연초에 유투브에서 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합창> 교향곡을 감상하는데, 아름답고 웅장한 “환희”의 노래 중 반복되는 한 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Brüder, über'm Sternenzelt 형제여! 별이 반짝이는 저 높은 곳에 Muß ein lieber Vater wohnen 사랑하는 아버지가 살아계시니... 왜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들으며 다난했던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의 희망을 다짐하는지, 이 가사에서 답을 찾아봅니다. 우리 삶이 아무리 어렵고 복잡하고 막막해도, 저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보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을 믿을 때, 삶은 여전히 희망이 있고 기뻐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잠언의 지혜는 ‘하나님의 계심’에 대한 견고한 믿음과 통찰을 곳곳에서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왕의 마음도 수로의 물처럼 그 분의 뜻대로 움직이신다(21:1), 사람의 판단은 자기중심적으로 왜곡되어 있지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최종적으로 판단하신다(2), 의로우신 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에는 ‘반전’이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사람들은 전형적인 인물 보다 ‘반전’있는 캐릭터에 더 매력을 느낍니다. 예를 들면,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나오는 아라곤 같은 인물이 그렇습니다. 반지의 제왕 1편에서 아라곤이 처음 등장할 때는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헷갈립니다. 얼마 후 좋은 사람인가보다 안심하게 되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주인공이라기보다 그저 조력자에 불과한 떠돌이 검객 같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아라곤이 인간 왕의 마지막 후손인 것이 밝혀지고, 나중에는 악한 사우론의 시대를 끝내고 인간세계의 왕이 되는 인물로 전면에 그려집니다. 이런 부분만 놓고 봐도, 톨킨이 얼마나 탁월한 이야기꾼인지 감탄을 하게 됩니다. 누가복음을 읽어보면, 20세기의 톨킨보다 훨씬 오래 전 고대의 역사가인 누가가 얼마나 치밀하고도 탁월한 이야기꾼인지에 새삼 놀랍니다. 누가복음에는 어떤 인물도 전형적인 인물이 없고, 이야기는 항상 반전에 반전을 거듭합니다. 누가가 묘사하는 반전 있는 캐릭터들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은 물론 예수님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한 번에 다 보여주지 않습
아일랜드 출신의 락그룹 U2의 리더 보노(Bono)는 공공연하게 자신의 크리스천 신앙을 밝히지만, 한편으로는 교회에 대해 매우 비판적입니다. 특히 그는 그리스도인들의‘위선적’인 모습을 자주 비난합니다. 언젠가 보노가 신학자 유진 피터슨과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보노의 질문이, 왜 오늘날 교회가 부르는 노래들은 시편의 기도들처럼 진솔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시편에는 수많은 애가와 탄식과, 절망의 노래들이 가득한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애가를 찾아보기도 어렵고, 현실에 대한 치열하고 정직한 고민이 담긴 노래를 듣기 어렵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오늘 이사야서 말씀은 절망의 노래에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현실이 정의와 공의가 없어 캄캄한 암흑 속을 헤매는 것 같고, 사람들이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실제로는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고, 정직과 성실과 정의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의인이 도리어 손해를 보고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탄식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모두 어긋날 대로 어긋나 있습니다. 곰 같이 부르짖고 비둘기 같이 울면서 회복을 바라보지만 곪아져버린 내부에서 회복의 힘이 없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도움의
복음서에서 예수님께 칭찬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믿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믿음이 예수님이 칭찬하시는 믿음일까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라는 적극적 사고방식이 믿음일까요? 소위, ‘응답받는 믿음’,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일까요?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 하나님은 선하게 응답하시고, 불가능도 가능케 하십니다. 오늘 백부장의 믿음도 하인의 병이 낫는 ‘응답’을 분명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수님이 백부장의 믿음에 감동하시고, 놀라워하시며, 크게 칭찬하신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백부장의 믿음은 겸손한 믿음이었습니다. ‘나는 자격이 없다’는 믿음입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가 유대교로 개종했는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유대교에 호의적이었고, 상당한 물질적 후원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온 장로들은 ‘ 이 사람은 다른 이방인들하고 다릅니다, 그는 주님의 은혜를 받기 합당합니다‘라고 천거합니다. 하지만 백부장 자신의 평가는 전혀 달랐습니다. ’나는 주님을 감히 모실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라며 주님의 방문을
언젠가 제가 존경하는 한 분이 ‘가벼운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은 오래 동안 컨설팅 관련 분야에서 승승장구 해왔던 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분의 강의와 조언에 감동을 받아 인생의 길을 새롭게 찾고, 수많은 조직들이 획기적인 전략수정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평생 좌절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던 분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니, 약간은 의외였습니다. 더구나 그 분은 신앙심이 정말 깊은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 잘 믿고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온 사람은 우울증 같은 건 모르고 살아야 되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오늘 시편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시편의 저자도 한 때 모든 일이 형통하고 탄탄대로를 달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그는 깊은 수렁에 빠졌고, 영혼이 ‘죽음의 감옥’에 갇힌 듯한 어둠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런 과정 속에서 주옥같이 아름다운 감사의 찬양을 노래합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본심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5,6)”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를 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