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를 등교시키기 위해 차를 태우고 가다보면 한국에서 가장 화려한 고층빌딩들과 백화점, 고급 아파트들이 밀집되어 있는 거리를 지나게 됩니다. 길에는 수입차들이 국산차보다 더 많이 보이고, 최첨단 유행이 가장 먼저 상륙하는 곳이라 최근 유행 동향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사교육열풍의 진원지이인 학원 밀집 거리를 빠져나와 터널 하나를 지나면, 한적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교회가 우리 교회입니다. 이런 지역에서 사역하다보면, 가끔 회의가 찾아옵니다. 학부모들에겐 학원 강사의 말이 하나님 말씀보다 더 크게 들리는 것 같고, 최첨단을 달리는 물질문화 속에 교회는 빛바랜 골동품 같고, 극도로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세대에게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지극히 요원한 꿈으로 느껴집니다.
왕위를 받으러 떠난 주인에게서 ‘한 므나’를 받은 종들의 심정도 비슷했을 겁니다. 주위에는 온통 주인이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 불신과 냉소의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주인이 맡겨준 ‘한 므나’는 세상을 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원이라 이걸로 뭘 하나 위축되고, 위험부담도 너무 큽니다. 그러나 신실하고 충성된 종들은 그 ‘한 므나’를 가지고 믿음의 모험을 시작합니다. 주인이 돌아오기까지 온 힘을 다해서 결국 그 한 므나가 열배, 다섯 배가 되게 합니다. 그래서 주인이 돌아왔을 때 큰 칭찬과 함께 열 고을의 권세와 책임을 받습니다. 그러나 어떤 종은 주인을 불신하고 ‘한 므나’를 그냥 감춰둡니다. 한 므나를 하찮게 여긴 종은 결국 그 한 므나마저 빼앗기게 됩니다.
말씀을 묵상하다 이 ‘한 므나’가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님 나라고, 복음이구나 생각됩니다. 하나님은 악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 므나’ 같이 작고 평범한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를 맡겨 주셨습니다. 가룟 유다처럼 적어도 ‘30므나(?)’는 있어야 만족하는 사람, 세상의 화려한 물질적 가치를 좇는 사람에게는 초라하고 하찮게 보입니다. 그러나 한 므나가 열 므나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고, 한 므나에 충성하는 자가 그 나라의 주역이 됩니다. 이 비밀을 알면 세상과 교회가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어두운 시대에 교회가 맡은 하나님 나라 복음에 신실함을 지킬 힘을 더욱 얻습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가 세상을 삼키고 영원히 다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QT묵상집 <복있는사람> 2018년 3-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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