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동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예루살렘에서 인사드립니다. 저희 가족은 1월 4일 이스라엘에 잘 도착했고, 벌써 이곳에서 3번째 샤밧(유대인들의 안식일)을 지났습니다. 이스라엘은 금요일 저녁부터 안식일이 시작되고 토요일을 주일처럼 보냅니다(대부분 교회들이 토요일 오전에 예배드립니다). 이스라엘 방문은 저에게도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설고 적응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주님의 은혜 속에 우리 주님께서 걸으셨던 순례의 여정을 저희도 걸어가며, 보아야 할 것을 보고,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고, 들어야 할 주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에 도착한 다음날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통곡의 벽'(The Western Wall) 입니다.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이곳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한국 교회와 우리 자녀 세대, 그리고 무능한 목회자인 제 자신을 생각하며 통곡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데, 막상 와보니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자연스럽게 먼저 기도가 나왔습니다. AD 70년에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도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 때 로마가 자신들이 얼마나 거대한 성전을 무너뜨렸는지 증거를 남기기 위해 서쪽 벽 일부를 남겨두었는데 그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통곡의 벽입니다(그래서 Western Wall 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무너졌던 성전 벽 잔해는 지금 지하 터널 속에 묻혀 있고, 현재의 벽은 이후 여러 시대를 거쳐오며 다시 쌓은 것입니다. 통곡의 벽 바로 뒤편에 빛나고 있는 무슬림의 황금돔과, 하루 다섯번 기도시간이면 마이크를 크게 틀어놓고 읊조리는 무슬림들의 기도소리를 들으면서 왜 이 땅이 그토록 민감하고 치열한 분쟁 지역인지 직접 눈과 귀로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성지'인 이곳에서 이스라엘 도착 첫 날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를 드렸습니다(시 122:6).
저희가 방문한 날 통곡의 벽 뒤쪽에서는 엄청난 군인들이 모여서 함성을 지르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스라엘 군인들은 신병 훈련을 마치고 통곡의 벽에 와서 일종의 선서식과 같은 의례를 가진다고 합니다. 실탄이 장전 된 총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실은 너무 앳되 보여서 안쓰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습니다. 특히 말로만 듣던 이스라엘 여군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청년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한참 공부하거나 놀고 싶을 나이에 이스라엘 청년들은 군대에 와서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 의무 복무를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실전 임무에 투입되니 이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어떨까요. 그래도 통곡의 벽에 와서 노래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유대인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삼 천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유대인들과 기독교의 유산들이 켜켜이 도시 곳곳에 쌓여있는 예루살렘은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 같은 곳입니다. 올드시티(예루살렘 구시가지) 안에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14개의 지점을 기념하는 비아 돌로로사가 있고,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장소를 기념하여 세운 성분묘교회를 중심으로, 베데스다 연못,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시고 빌라도에게 사형 선고를 받으신 장소들이 있습니다. 아래 첫 사진은 아름다운 성분묘교회의 천장 돔 사진입니다. 주님이 온 세상의 빛 되심을 아름답게 표현한 고대 건축물입니다. 이곳에서 유대인과 무슬림 사이에 적대감과 벽을 허물고 세상의 평화를 이루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음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실제로 (크리스쳔 순례객들이 다수인) 관광업이 중요한 수입원인 이곳에서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은 다른 건 몰라도 관광에 대한 부분에서는 서로 하나가 된다고 하니, 그리스도가 이 땅의 평화이심이 뜻밖의 장소에서 증명되는 듯합니다.
올드 시티 동쪽에는 올리브산(감람산)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이 마지막 기도를 올리신 겟세마네 교회(열방교회), 승천하신 곳을 기념하는 승천교회,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것을 기념하는 주기도교회,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신 곳에 세워진 눈물교회(Dominus Flevit)가 있습니다. 한 곳 한 곳이 모두 주님의 발자취를 모두 담고 있기에 그냥 쉽게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방문한 곳에서 때로는 묵상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기도 하고, 가족들이 함께 사진을 찍으며 대화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중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눈물교회(Dominus Flevit)였습니다. 작은 교회 안에 주님의 가시 면류관을 닮은 아름다운 창문이 하나 있는데 그 창너머로 무슬림들의 랜드마크인 황금돔이 자리잡은 예루살렘 성의 모습이 보입니다. 사실 그 자리는 원래 예루살렘 성전이 자리잡았던 곳입니다. 주님이 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고 우셨는지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느껴지는 장소입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눅19:41-42).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눅13:34). 지난 이천년 역사 동안, 이 예루살렘을 두고 수많은 전쟁과 살육이 있었는데, 주님이 오신지 이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첨예한 갈등과 긴장의 불씨가 존속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속히 다시 오셔서 예루살렘과 이 땅의 평화가 회복되고, 모든 민족과 열방이 주님의 의의 통치를 경험하게 되기를 소망하는 기도가 저절로 우러나왔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금요일 해질 무렵부터 샤밧-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금요일 오후 2시면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고, 버스나 트램도 다니지 않습니다. 심지어 공공장소와 호텔에서는 엘리베이터도 매 층마다 저절로 서고 열리고 닫히고를 반복합니다(엘리베이터 버튼도 누르지 말라는 의미). 말 그대로 모든 사회가 '멈춤'(샤밧의 문자적 의미)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봅니다.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20:10-11) 말씀이 그대로 와 닿습니다. 우리 가정도 이스라엘에 와서는 샤밧의 리듬을 지키며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다. 해지기 전에 안식일 식사 준비를 미리 다 해두고 , 해가 질 무렵에는 촛불을 켜고 가족이 감사와 축복기도를 드립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가장 즐거운 날이어야 하기 때문에, 특별히 이날만 먹는 디저트나 빵 문화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후 유대인들은 가까운 회당에 온 가족이 걸어서 가서 토라를 읽고 기도를 드립니다. 저희도 시장에서 맛있는 디저트를 사와서 아이들과 즐겁게 나누어 먹으며 첫 안식일을 맞이했습니다. 저희도 가까운 선교 공동체를 걸어서 갔는데, 검정옷을 입은 젊은 유대인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회당으로 가는 모습들이 신선하고 감동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저녁에도 회당예배를 드리지만, 안식일 첫날 저녁은 가족중심의 식탁예배가 메인입니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우리로는 주일 아침) 예배는 회당에서 온 공동체가 같이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공부합니다. 저희는 금요일 저녁예배는 한국 선교사 공동체에 가서 샤밧 예배를 드리고, 토요일 아침 예배는 유대인 크리스천 공동체(메시아닉 유대인)를 방문해서 함께 예배드렸습니다. 히브리어와 영어로 동시에 예배가 진행되었는데, 10시30분에 시작된 예배가 거의 두 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아이들은 성찬식과 찬양, 기도 순서까지는 같이 하다가 설교가 시작될 때 주일학교로 흩어졌습니다.. 막내 소리가 영어를 한마디도 모르는데도 유대인 친구들이 굉장히 따뜻하게 환영해 주고 잘 도와주어서 너무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유대인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하나님 말씀대로 낯선 친구들을 환대하는 훈련이 잘 되어 있구나 싶어 감동이었습니다. 예배가 마치면 온 교인들이 간단한 식사(후무스와 채소를 곁들인 빵과 커피)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맞이하는 안식일은 깊고 평안한 쉼이 있고, 특별하고 맛있는 음식들과 즐거운 분위기가 있고, 가족들의 연합과 회복이 있으며, 온 종일 계속되는 예배와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임재가 있고 성도의 교제가 있는 거룩하고 복된 , 작은 천국을 맛보는 시간입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 133:1-3)
저희는 이곳에 와서 이스라엘의 과거와 오늘을 모두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 국토의 90%가 쓸모없는 불모지인 땅을 개척해서 오아시스로 만들어 온 개척 이야기, 기독교의 유산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지만, 자기들의 유산인 토라와 고난의 역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잘 보존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이야기, 전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의 문화가 복합되어서 갈등 속에서도 서로 공존하고 있는 독특한 문화, 그리고 세계적인 혁신을 이루고 있는 기술 강국, 과학 강국으로서의 모습과 한국인들이 가장 관심 있어하는 유대인들의 교육에 대해서도 여기서 배우고 보고 느낀 것들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안식월 기간 동안 주님 안에서 저희의 여정이 선하게 인도함을 받기를 기도 부탁드리며,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평안의 인사를 우리 일원동교회 성도님들 모두에게 전합니다. 샬롬!
주안에서, 배준완 목사 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