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은 우리의 목소리와 영혼과 삶을 담아 하나님앞에 드리는 믿음의 고백이며, 곡조가 있는 기도입니다.  예배 찬양은 사회자/찬양인도자의 인도에 맞추어 온 회중이 함께 한 목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특히, 주일 예배를 시작하는 찬양은 삼위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기리는 영광송, 송영, 삼위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담아 올리고, 말씀 전후에 부르는 찬양은 그리스도 중심으로, 말씀의 내용과 연관된 믿음의 고백과 감사, 신앙의 결단을 담아 올려드립니다. 


성가대의 찬양은 좀 더 음악적인 화음을 더해서, 정성을 다해 미리 준비하고 연습한 성가대가 회중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는 시간입니다. 온 성도는 성가대의 찬양에 아멘으로 화답함으로,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찬송 가운데 거하시는 분(시22:3)'입니다. 성경은 성도 뿐 아니라, 모든 만민과 모든 만물이 손뼉을 치며, 목소리를 높이고, 모든 공교하고 아름다운 악기로, 춤을 추며, 온 힘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노래와 비교할 수 없는, 영혼의 일곱 빛깔로 빚어, 마음을 다해 부르는 찬양과 믿음의 노래들.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예배자가 누리는 특권이며,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안식일: 마음, 생각, 힘을 다해 하나님 사랑하기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이고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과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우리 몸을 사랑하듯 이웃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도덕적으로 실패하고 모든 것이 뒤틀리고 꼬이는 근본 원인은 바로 율법의 첫 번째 요구, 하나님 사랑에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울까요. 물론, 교회에 와서 찬양하고 예배드리면서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 마음과 힘과 뜻과 삶을 전부 드리는 신실하고 한결같은 사랑은 못합니다. 아니,안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에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기 때문에, 우리는 불신앙과 우상숭배를 공기처럼 흡입하며 살아갑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물질문명의 풍요와 그것이 조장하는 탐욕의 문화는 모든 진정한 풍요와 아름다움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가려버립니다. 과학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의 법칙만으로 세상이 창조되고 유지되는 것처럼 우리의 사고를 지배합니다. 우리는 ‘바람을 잡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