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일이 보상받지 못할 때

눅 6:43-45



유명한 승려 분에게 한 청년이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신이 해외의 가난한 나라에 봉사를 하러갔는데 아무도 자기 수고를 알아주지 않고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람도 못 느끼고 허탈해서 돌아왔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저도 청년들로부터도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나 다문화가정 어린이 사역에 황금 같은 시간을 쪼개서 봉사하러 가면 종종 아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답니다.‘ 선생님, 여기 왜 왔어요? 봉사점수 따려고 왔죠?’ 아이들이 자기의 선의를 무시하는 거 같아 동기부여도 안 되고, 힘이 빠진다는 겁니다. 이런 질문에 그 스님은 뭐라고 답했을까요? ‘칭찬이나 감사와 같은 심리적 보상을 위해서 하는 봉사는 진정한 봉사가 아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답하실까요?

 

본문에서 예수님은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43). 행동과 실천은 존재의 근원적인 상태, 즉 마음과 따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마음이야 어떻든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괜찮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행동은 사실 마음에서부터 흘러나옵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이 근본적으로 심각하게 고장이 났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부패한 마음에서는 궁극적으로 선한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선한 열매는 행동이전에 그 뿌리가 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나라 혁명을 무엇보다 먼저 마음의 혁신에서 시작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이 어떻게 좋은 마음으로 바뀔 수 있을까요? 주님은 우리 마음의 지향성, 마음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이 바뀌어야 한다고 보셨습니다. 우리의 옛 마음, 옛 자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성령 안에서 거듭나서, 새로운 자아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덧입는 것입니다. 좋은 마음은 예수님과 연합해서 성령의 지배를 받는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이 좋은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심리적 보상이나 다른 어떤 보상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선한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동기는 주님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우리 스스로의 마음으로는 선한 행동을 끝까지 지속할 수 없습니다. 교회 일을 하다가,  선한 일을 위해서 남모르는 수고를 많이 했는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할 때가 있습니까. 주님의 마음을 다시 품어야 합니다. 성도는 자기만족을 구하거나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돌이킨 사람입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시작한 일은 끝까지 성령으로 마쳐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결코 헛되지 않고 반드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했기에,  언젠가는 사람들의  칭찬도 있을 것입니다(14:18).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말에서나 일에서나, 작은 것 하나라도 주 예수의 마음으로 끝까지 감당하는 좋은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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