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가?

출20:4-6



유대교는 고대종교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신을 눈에 보이는 어떤 형상으로 규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철저히 배격했던 종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신을 두려워하고 숭배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신을 어떻게 숭배하고 섬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고대의 신들은 모두 인간의 깊은 공포심과 동경을 반영한 형상들- 때로는 끔찍하고 기괴스럽고, 때로는 아름답고 위엄있는 모습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은 눈에 보이는 어떤 형상으로도 자신을 표현되하거나 예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분은 자신의 백성들을 큰 능력으로 구원하시고, 그의 종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거룩한 말씀-토라’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백성들이 토라를 순종하고 실천함으로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온 세상에 나타내 보여주는 ‘하나님의 형상’이 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서 하나님을 숭배하고픈 유혹을 계속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아론이 광야에서 금송아지가 그랬고, 여로보암이 실로에 만든 금송아지가 그랬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명나무’로 여기고 섬겼던 모든 언덕위의 크고 푸른 나무들이 그랬고, 바알과 아세라 신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들을 구원하고 토라를 주신 하나님과 그들의 눈에 보이는 거짓 우상들의 이미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적당히 혼합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편이대로, 유행하는 사조대로, 때로는 금송아지를, 때로는 바알과 아세라를, 때로는 산당의 푸른 나무들을 자신들을 구원헤 줄 ‘하나님의 이미지’로 생각하고 예배했습니다. 이렇게 ‘거짓 이미지’들에 마음을 빼앗긴 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미지가 되어야 할 자신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상실하고 이방민족들과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들에게서 기대하셨던 정의와 자비와 하수처럼 흐르는 나라, 지혜와 지식이 넘치는 거룩한 백성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 이스라엘’이자 ‘새 아담’으로 오셔서,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서에서 묘사하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필립 얀시는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란 책에서 “따분한 인물과 예측 가능한 인물이라는 두 표현만큼은 결코 복음서의 예수에 대해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혹시 ‘따분하고 재미없고, 늘 굳게 입술을 다물고 있으며, 무섭고, 고집불통인 노인네’ 같은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들이 있습니까?  눈을 크게 뜨고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아야 합니다. 자비와 긍휼과 연민이 넘치며, 죄인들과 잔치를 즐기셨지만, 교만한 자들과 권력자들과 위선자들에게는 엄중한 책망과 경고를 퍼부으시고, 사람들의 작은 믿음과 순종에 감동하시는 예수님을 보기 바랍니다. 그 분이 곧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하나님을 거짓된 이미지들로 축소시키며 내 만족과 내 중심적 방식으로 잘못 예배하기 쉬운 시대에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에게 시선을 집중할 때, 참 하나님을 알아가며 예배할 수 있습니다.

 

배준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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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마음, 생각, 힘을 다해 하나님 사랑하기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이고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과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우리 몸을 사랑하듯 이웃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도덕적으로 실패하고 모든 것이 뒤틀리고 꼬이는 근본 원인은 바로 율법의 첫 번째 요구, 하나님 사랑에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울까요. 물론, 교회에 와서 찬양하고 예배드리면서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 마음과 힘과 뜻과 삶을 전부 드리는 신실하고 한결같은 사랑은 못합니다. 아니,안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에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기 때문에, 우리는 불신앙과 우상숭배를 공기처럼 흡입하며 살아갑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물질문명의 풍요와 그것이 조장하는 탐욕의 문화는 모든 진정한 풍요와 아름다움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가려버립니다. 과학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의 법칙만으로 세상이 창조되고 유지되는 것처럼 우리의 사고를 지배합니다. 우리는 ‘바람을 잡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