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신앙을 넘어, 은혜 신앙으로

고린도후서 9:6-15



고후 9:6-8 "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한국 교회에는 오랫동안 축복의 복음이 번성했습니다. 많은 기도를 드리고, 많은 헌금을 드리고, 많은 봉사를 하면,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아 세상에서 성공하고, 물질적으로도 번성한다는 논리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난하고 희망이 없었던 시절에 축복의 복음은 큰 매력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복 받고 잘 되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헌금하고, 헌신하면서, 성장의 큰 동력을 얻었습니다


얼핏 보면,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심음과 거둠의 원리는 한국 교인들에게 익숙한 축복 신앙을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씨를 적게 뿌리면 수확을 적게 거두고, 아낌없이 많이 뿌리면 많은 수확을 얻는 것처럼, 헌금도 아낌없이 많이 드리는 사람이 더 많은 은혜를 받는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은혜는 세상적인 성공이나 물질적인 번영이 아닙니다. 도리어 영적인 부요함과 무엇보다 의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심는 자에게 심을 씨앗과 먹을 양식을 후히 주시는 은혜로운 분이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 내가 이만큼 드렸으니 최소 이만큼 거두도록 보상해 주셔야 합니다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지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축복 신앙을 넘어, 정말 성경이 말하는 은혜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최근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한국 사회도 저성장과 경기 침체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사람들이 가장 먼저 아끼기 쉬운 것은 이런 저런 기부금과 헌금입니다. 그러나 경제 논리가 아닌 은혜의 원리에 따르면, 어려운 중에도 여전히 풍성한 은혜를 나눌 수 있고, 선한 일을 위해 더 많이 심을 수 있습니다. 바울의 동역자들처럼 선한 일을 정직하고 은혜롭게 이루는 신뢰성과 투명성이 더욱 철저히 요구되는 것도 물론입니다. 이러한 성숙하고 자발적인 은혜 신앙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선하심을 나타내고, 위기의 때에 복음이 더욱 강력히 증거 되는 진정한 성장의 동력이 될 것입니다.

 

 

배준완 목사


QT묵상집 <복있는사람> 2016년 11-12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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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마음, 생각, 힘을 다해 하나님 사랑하기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이고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과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우리 몸을 사랑하듯 이웃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도덕적으로 실패하고 모든 것이 뒤틀리고 꼬이는 근본 원인은 바로 율법의 첫 번째 요구, 하나님 사랑에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울까요. 물론, 교회에 와서 찬양하고 예배드리면서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 마음과 힘과 뜻과 삶을 전부 드리는 신실하고 한결같은 사랑은 못합니다. 아니,안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에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기 때문에, 우리는 불신앙과 우상숭배를 공기처럼 흡입하며 살아갑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물질문명의 풍요와 그것이 조장하는 탐욕의 문화는 모든 진정한 풍요와 아름다움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가려버립니다. 과학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의 법칙만으로 세상이 창조되고 유지되는 것처럼 우리의 사고를 지배합니다. 우리는 ‘바람을 잡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