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말씀, 광장의 말씀

사도행전 17:10-21



"광야에서 말씀으로 서고 광장에서 말씀으로 살라!" 2017년 일원동교회의 표어입니다. 광야와 광장, 어찌보면공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아주 상반된 곳입니다. 광야는 고독하게 홀로 주님과 직접 대면하는 자리를 말합니다. 광장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터와 직장, 문화와 경제와 정치를 다루는 곳,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하며 물건을 사고파는 모든 일상적 삶의 자리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 곳 중 그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아니,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광야 속에서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삶의 광장에서 주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베뢰아의 성도들과 아덴에서의 바울은 말씀으로 살아가는 두 가지 길을 보여줍니다


먼저 베뢰아 사람들은 광야에서 말씀으로 서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말씀을 그저 소비하는 청중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분별없이 맹목적으로 말씀을 받거나, 말씀을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도 않았습니다. 그 말씀이 정말 그러한가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며 씨름했습니다. 누가 일일이 떠먹여 주지 않아도 스스로 말씀을 찾아 먹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은 광야에 서는 것 같은 고독한 일입니다. 분주한 삶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이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고독과 고요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세미한 음성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는 때때로 거친 광야의 시간이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평소 늘 말씀으로 광야에 서는 훈련을 해야만 느닷없이 찾아온 인생의 광야에서도 거뜬히 설 수 있습니다. 어떤 유혹과 비바람이 닥치고 혼돈의 안개가 덮여도, 말씀 속에 닻을 내리고 빛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덴에서의 바울은 광장에서 말씀으로 살아가는 법을 보여줍니다. 그는 날마다 장터에서,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자연스럽게 토론하며 합리적으로 변증했습니다.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광야에서의 말씀에는 익숙해도 광장에서의 말씀에는 취약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목소리가 공적 영역이나 실제 삶에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과 신앙을 너무나 축소시키는 태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크심을 알고 믿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광장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요, 선하신 아버지며, 모든 아름답고 좋은 것들의 공급자 되심을 알려야 합니다. 이 깨어진 세상이 하나님의 원래 계획과 의도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를 밝혀 주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광야에 서고, 말씀으로 광장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혼탁한 세상 속에 생명의 물줄기를 공급할 이들 말입니다. 말씀이신 주님, 우리를 도와주소서!


배준완 목사


QT묵상집 <복있는사람> 2017년 3-4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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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https://pxhere.com/en/photo/562902

 


안식일: 마음, 생각, 힘을 다해 하나님 사랑하기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이고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과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우리 몸을 사랑하듯 이웃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도덕적으로 실패하고 모든 것이 뒤틀리고 꼬이는 근본 원인은 바로 율법의 첫 번째 요구, 하나님 사랑에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울까요. 물론, 교회에 와서 찬양하고 예배드리면서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 마음과 힘과 뜻과 삶을 전부 드리는 신실하고 한결같은 사랑은 못합니다. 아니,안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에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기 때문에, 우리는 불신앙과 우상숭배를 공기처럼 흡입하며 살아갑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물질문명의 풍요와 그것이 조장하는 탐욕의 문화는 모든 진정한 풍요와 아름다움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가려버립니다. 과학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의 법칙만으로 세상이 창조되고 유지되는 것처럼 우리의 사고를 지배합니다. 우리는 ‘바람을 잡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