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 소리, 확고한 사명

열왕기상 19:11-17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지난 15년 정도 청년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청년들과 씨름을 하다보면 낙심되는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말씀을 가르쳐도, 잠간 돌아서면 배신하고,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너무나 자주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왔다 갔다 하는 젊은이들이 부지기수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님, 이렇게 열매도 별로 보이지 않는 일에 제 인생을 허비하라고 저를 부르셨습니까?”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확실한”(?) 응답을 안 주십니다. 아니, 제가 기대하는 강한 바람 같고 지진 같고 불같은 응답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세미한 소리는 언제나 들을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세워 이스라엘의 영적인 암흑기를 뚫고 나갈 믿음의 세대를 일으킨 것처럼, “새로운 세대를 준비하는 일을 지속하라는 그 음성 말입니다.

 

엘리야는 세미한 음성중에 하나님께 세 가지 사명을 받습니다. 하사엘에게 기름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부어 자신의 선지자직을 계승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엘리야는 자신의 시대에 엘리사를 선지자로 세우는 일 밖에 못했습니다. 하사엘과 예후를 세우는 것은 엘리사가 한 일입니다. 우리 역시 우리 세대에 모든 사명을 다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다음 세대가 사명을 이어받아 더 많은 일을 이루도록 준비시켜야 합니다. 우리 선배 엘리야처럼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특심인 것은 본받아야겠지만, “불같은 역사가 지금 이 시대에 오직 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조급함은 우리를 낙심하게 하고, 인내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하나님이 왜 엘리야에게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바람 가운데에도, 지진 가운데에서도, 불 가운데에도 나타나지 아니하시고, “세미한 소리로 자신을 나타내셨을까요?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우리의 일상,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삶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시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매일 가정에서 자녀를 돌보고, 매주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고, 매번 만나는 청년들을 세우고, 매순간 말씀과 씨름하는 일상의 작은 사명을 흔들림 없이 신실하게 감당할 때,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 시대와 다음 시대에 당신의 위대한 일들을 조용히 그러나 아름답게 반드시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배준완 목사


QT묵상집 <복있는사람> 2016년 7-8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필자의 허락없는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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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Gusdlaz 출처 https://flic.kr/p/LhTk5N


안식일: 마음, 생각, 힘을 다해 하나님 사랑하기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이고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과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우리 몸을 사랑하듯 이웃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도덕적으로 실패하고 모든 것이 뒤틀리고 꼬이는 근본 원인은 바로 율법의 첫 번째 요구, 하나님 사랑에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울까요. 물론, 교회에 와서 찬양하고 예배드리면서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 마음과 힘과 뜻과 삶을 전부 드리는 신실하고 한결같은 사랑은 못합니다. 아니,안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에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기 때문에, 우리는 불신앙과 우상숭배를 공기처럼 흡입하며 살아갑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물질문명의 풍요와 그것이 조장하는 탐욕의 문화는 모든 진정한 풍요와 아름다움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가려버립니다. 과학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의 법칙만으로 세상이 창조되고 유지되는 것처럼 우리의 사고를 지배합니다. 우리는 ‘바람을 잡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