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God is too small!

출 7:14-8:15


Exodus Now & Then (7): Your God is too small!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겨우 내가 급할 때 나를 도와주는 하나님, 그저 나의 소원을 들어주는 하나님 정도는 아닌가요?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나 작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마법 램프의 요정 지니(Gini) 같은 그 정도의 존재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만 갇혀 있고, 종교 영역에서만 힘 좀 쓰시는 분이 아닙니다. 과학, 경제, 예술, 정치, 사회과학에서는 전혀 힘 못 쓰는 그런 작은 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그렇게 오해하고, 하나님의 영역을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으로만 축소시킵니다. 종교에서의 하나님, 나에게 심리적 위안과 평안을 주는 하나님은 믿지만, 학교와 전공 속에서, 직장에서, 일터와 사회생활에서, 국제정치와 외교 부분에서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합니다. 그런 공적인 영역에서는 하나님이 무능하시거나 안 계시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교회에 오면 하나님이 있는 것 같지만, 당장 교회 문 앞 열발자국만 나가도 거기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처럼 살아갑니다. 어디가서 괜히 그리스도인이라고 티내다가 나만 왕따 당하거나 손해보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 결코 작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 세상 그 어디도 하나님의 소유가 아닌 곳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의 학문, 과학, 정치, 문화, 예술, 경제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미치고 있습니다. 서구 과학과 학문 발전은 중세 수도원에서 보존하고 발전시켜 온 씨앗에서 자라났고, 종교개혁 이후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우주적 섭리에 대한 견고한 신앙이 확립된 후 우주와 만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천문학, 물리학 등의 눈부신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근대 자본주의를 가능하게 만든 토대는 청교도들의 검소하고 근면한 노동윤리와 청지기적 소명관, 그리고 과학발전의 힘이 결합된 잉여자본의 축적이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위대한 회화의 시대가 열려 렘브란트 등 걸출한 천재 화가들을 무수히 배출했던 것도 종교개혁 정신이 공헌한 바가 매우 큽니다. 서양음악의 발전에 교회가 기여한 바는 거의 절대적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구의 정치제도가 봉건제와 왕정을 넘어 민주정치로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교회의 신학적 발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집트의 거짓 신들을 심판하시는 오늘 출애굽의 말씀은 하나님을 너무나 작게 그리는 우리의 오해를 교정해줍니다.  우리 생각보다 훨씬 크시며, 온 세상을 다스리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생생하게 보도록 도전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작은 테두리에 갇혀 있는 옹졸하고 편협하고 지엽적인 분이 아닙니다. 온 세상 그 어느 한 구석도 그분이 다스리지 않는 영역은 하나도 없습니다. 출애굽의 열 재앙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각인시켜 준 사건입니다. 이집트 술사들도 이것을 인정하고 두 손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역을 벗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권능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손가락입니다.” 이집트 술사들의 입에서 이런 고백이 나오게 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모세와 같이 담대한 믿음으로 크신 하나님을 붙들고 순종하고 있는가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은 하나님이 부르시고 택하신 모세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오늘도 여전히 밝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배준완 목사 (일원동교회)


Copyright ⓒ 2017 JOON-WAN BAE All rights reserved.  

                  필자의 허락없는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사진출처: Pixabay


안식일: 마음, 생각, 힘을 다해 하나님 사랑하기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이고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과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우리 몸을 사랑하듯 이웃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도덕적으로 실패하고 모든 것이 뒤틀리고 꼬이는 근본 원인은 바로 율법의 첫 번째 요구, 하나님 사랑에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울까요. 물론, 교회에 와서 찬양하고 예배드리면서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 마음과 힘과 뜻과 삶을 전부 드리는 신실하고 한결같은 사랑은 못합니다. 아니,안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에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기 때문에, 우리는 불신앙과 우상숭배를 공기처럼 흡입하며 살아갑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물질문명의 풍요와 그것이 조장하는 탐욕의 문화는 모든 진정한 풍요와 아름다움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가려버립니다. 과학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의 법칙만으로 세상이 창조되고 유지되는 것처럼 우리의 사고를 지배합니다. 우리는 ‘바람을 잡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