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dus Now and Then(8): 강자와 약자


인간은 누구나 상처와 연약함과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깊은 상처와 열등감으로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기력에 빠져 지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연약함과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온갖 가면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데 급급합니다. 모세 역시 젊은 시절의 실패와 상처로 내면에 큰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광야의 도망자에서 이스라엘의 해방자로 부름 받았지만 여전히 상처가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파라오 앞에 서는 것이 두렵고 말재주가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할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은 아론을 붙여주셔서 약점을 보완하게 하시고, 함께 말씀을 받아 사명을 이루어가게 하셨습니다.


열재앙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모세가 어떻게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세 번의 재앙은 모세와 아론이 함께 일으켰고, 아론의 지팡이를 통해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재앙부터는 모세의 직접적 역할이 점점 많아집니다. 일곱 번째 재앙부터는 모세의 지팡이가 이적을 일으키고, 여덟 번째 재앙부터는 모세가 지팡이도 필요 없이 하늘을 향해 손을 들 때 이적이 일어납니다. 모세의 능력(?)이 더 강력해지고 담대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말재주가 없어 파라오 앞에 홀로 서기를 두려워했던 모세가 열 재앙이 진행되는 동안, 파라오와의 거듭된 협상에서 전혀 밀리거나 타협하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지도자가 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세상 속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렇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거듭될수록 능력이 더 강화되고 담대해지며,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잠재력을 거침없이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파라오는 이와 몹시 대조직입니다. 처음에는 여호와가 누구냐, 나는 그를 알지 못하니 그 말을 안듣겠다고 했던 자존심의 끝판왕 태양신의 아들이 재앙이 거듭될수록 조금씩 태도가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버티다가, 다음에는 모세를 불러 잘못했다고 사과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이런 저런 협상안을 제시하면서 급한 불을 끄려고 하고, 다급해지니까, 나와 내 백성이 잘못했고 너희는 의로우니 너희 말대로 자유를 주겠다고 코가 납작해져서 사정하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그러고서도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완강한 고집을 굽히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을 믿고 큰소리치며 하나님께 대항하는 사람들은 이렇습니다. 급한 일을 만날 때는 이리저리 물결치며 당장 눈앞에 벌어진 사태를 해결하는 데 안절부절하며 무력함과 완고함을 반복하다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파라오의 본질이고, 세상의 강자들의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세상의 강자들 너무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며 나아가는 이들이 아무리 약해 보여도 진짜 강자입니다.  그들이 결국엔 승리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배준완 목사 (일원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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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마음, 생각, 힘을 다해 하나님 사랑하기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이고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과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우리 몸을 사랑하듯 이웃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도덕적으로 실패하고 모든 것이 뒤틀리고 꼬이는 근본 원인은 바로 율법의 첫 번째 요구, 하나님 사랑에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울까요. 물론, 교회에 와서 찬양하고 예배드리면서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 마음과 힘과 뜻과 삶을 전부 드리는 신실하고 한결같은 사랑은 못합니다. 아니,안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에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기 때문에, 우리는 불신앙과 우상숭배를 공기처럼 흡입하며 살아갑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물질문명의 풍요와 그것이 조장하는 탐욕의 문화는 모든 진정한 풍요와 아름다움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가려버립니다. 과학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의 법칙만으로 세상이 창조되고 유지되는 것처럼 우리의 사고를 지배합니다. 우리는 ‘바람을 잡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