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시고, 만남을 주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고 반대로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찾는데, 하나님이 나를 안 만나주신다고 서운해 하기도,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숨바꼭질을 한다면, 숨는 쪽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입니다.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에 그 분을 되도록 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 했을 때, 하나님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시고, 먼저 불러주셔야만 합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부르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치 능숙한 어부가 그물망을 좁혀오는 것처럼, 주님은 주도면밀하게 베드로를 낚아(?)주십니다. 베드로를 먼저 찾아가시고, 그의 배를 사용하도록 먼저 요청하시고, 그 배에 올라 말씀을 들려주시고, 전날 밤 아무것도 잡지 못해 낙심한 그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명령하십니다. 베드로의 상황과 마음을 꿰뚫어보고 다가가, 결국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라는 반응을 얻어냅니다. 주님은 적극적이고 베드로는 마지못해 반응하는 수준입니다. 그 ‘마지못한’ 순종의 결과, 베드로는 주님의 기적을 보고, 그 분의 두려우신 능력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그 분이 부르신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위해 그 분을 따릅니다.
자아도취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내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내가 원할 때는 하나님이 짠~하고 나타나셔서 뭔가 해 주셔야 하고, 평소에는 멀찌감치 떨어져 계셔서 내 삶에 되도록 간섭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작 주님이 부르실 때는, 이런 저런 핑계로 무시하거나 거부합니다. 그러고도, 다급할 때는, 내가 이렇게 힘든데 하나님은 뭐하시냐고 원망하며 냉소적으로 반응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고 다가오시니까 우리가 그 분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우리에개, 주님이 환난과 고통으로 그 분의 두려우심을 보이는 것은 징계가 아니라 은혜인지 모릅니다. 주님이 먼저 다가와 부르실 때, 베드로처럼 마지못한 순종이라도 한 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작은 순종의 걸음이 두려움을 넘어 평안으로, 낙심을 넘어 소망과 소명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배준완 목사
QT묵상집 <복있는사람> 2018년 1-2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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