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믿음, 맡기는 믿음

누가복음 7:1-17


복음서에서 예수님께 칭찬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믿음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믿음이 예수님이 칭찬하시는 믿음일까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라는 적극적 사고방식이 믿음일까요? 소위, ‘응답받는 믿음’,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일까요?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 하나님은 선하게 응답하시고, 불가능도 가능케 하십니다. 오늘 백부장의 믿음도 하인의 병이 낫는 응답을 분명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수님이 백부장의 믿음에 감동하시고, 놀라워하시며, 크게 칭찬하신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백부장의 믿음은 겸손한 믿음이었습니다. ‘나는 자격이 없다는 믿음입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가 유대교로 개종했는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유대교에 호의적이었고, 상당한 물질적 후원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온 장로들은 이 사람은 다른 이방인들하고 다릅니다, 그는 주님의 은혜를 받기 합당합니다라고 천거합니다. 하지만 백부장 자신의 평가는 전혀 달랐습니다. ’나는 주님을 감히 모실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라며 주님의 방문을 겸손히 사양합니다. 그는 주님께 당당하게 주장하는 태도가 전혀 없습니다. 내가 지금껏 이만큼 헌신했으니, 예수님도 이 정도는 해 주셔야 한다는 그런 자세가 아닙니다. 사실,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나는 은혜 받을 자격이 없다라는 겸손하고도 정직한 자기 인식이 있었기에, 그의 믿음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둘째, 백부장의 믿음은 예수님의 권세를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맡기는 믿음이었습니다. ‘말씀만 하시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는 말은 내 소원대로 허락해 주실 줄 믿~쑵니다식의 적극적 사고가 아닙니다. 주님의 권세와 주권에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내 뜻의 성취가 목적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믿고 자신의 염려와 두려움을 맡기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믿음을 주님 앞에 고개를 뻣뻣하게 세우고 뭔가 요구하는 태도로 착각합니다. 주님의 주권보다, 내 뜻을 빨리 이루고 싶은 욕망을 믿음으로 착각합니다. 그런 믿음에는 끈기가 없습니다. 원하는 것이 즉각 이루어지면, ‘할렐루야~아멘이지만, 응답이 금세 없으면 믿어도 소용없다고 돌아섭니다. 그러나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믿음은 끝까지 기다립니다. 즉각 떨어지는 응답이나 결과가 주어지지 않아도, 처음부터 주님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기에, 끝까지 그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인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시대에,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 우리의 조급하고 자의적인 부끄러운 믿음을 되돌아봅니다.


배준완 목사


QT묵상집 <복있는사람> 2018년 1-2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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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우리가 애가를 불러야 할 이유 아일랜드 출신의 락그룹 U2의 리더 보노(Bono)는 공공연하게 자신의 크리스천 신앙을 밝히지만, 한편으로는 교회에 대해 매우 비판적입니다. 특히 그는 그리스도인들의‘위선적’인 모습을 자주 비난합니다. 언젠가 보노가 신학자 유진 피터슨과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보노의 질문이, 왜 오늘날 교회가 부르는 노래들은 시편의 기도들처럼 진솔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시편에는 수많은 애가와 탄식과, 절망의 노래들이 가득한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애가를 찾아보기도 어렵고, 현실에 대한 치열하고 정직한 고민이 담긴 노래를 듣기 어렵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오늘 이사야서 말씀은 절망의 노래에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현실이 정의와 공의가 없어 캄캄한 암흑 속을 헤매는 것 같고, 사람들이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실제로는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고, 정직과 성실과 정의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의인이 도리어 손해를 보고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탄식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모두 어긋날 대로 어긋나 있습니다. 곰 같이 부르짖고 비둘기 같이 울면서 회복을 바라보지만 곪아져버린 내부에서 회복의 힘이 없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도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