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대가, 누가

누가복음 서론 (1:1-20)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에는  반전이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사람들은 전형적인 인물 보다 반전있는 캐릭터에 더 매력을 느낍니다. 예를 들면,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나오는 아라곤 같은 인물이 그렇습니다. 반지의 제왕 1편에서 아라곤이 처음 등장할 때는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헷갈립니다. 얼마 후 좋은 사람인가보다 안심하게 되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주인공이라기보다 그저 조력자에 불과한 떠돌이 검객 같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아라곤이 인간 왕의 마지막 후손인 것이 밝혀지고, 나중에는 악한 사우론의 시대를 끝내고 인간세계의 왕이 되는 인물로 전면에 그려집니다. 이런 부분만 놓고 봐도, 톨킨이 얼마나 탁월한 이야기꾼인지 감탄을 하게 됩니다.

 

누가복음을 읽어보면, 20세기의 톨킨보다 훨씬 오래 전 고대의 역사가인 누가가 얼마나 치밀하고도 탁월한 이야기꾼인지에 새삼 놀랍니다. 누가복음에는 어떤 인물도 전형적인 인물이 없고, 이야기는 항상 반전에 반전을 거듭합니다. 누가가 묘사하는 반전 있는 캐릭터들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은 물론 예수님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한 번에 다 보여주지 않습니다. 마치 양파껍질을 벗기듯이 그 분의 면모를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보여주며 그 분에 대한 궁금증과 의문들을 유발시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절정에 가서 독자들의 모든 생각을 뛰어넘는 놀라운 그리스도의 실체를 보여줍니다.

 

누가복음의 첫 장면에 나오는 사가랴 역시 반전 있는 인물입니다. 사가랴 부부는 제사장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은 경건하고 의로운 유대인이었지만, 늙어서까지 자녀가 없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자녀가 없다는 것은 저주받은 사람이란 뜻이고, 오늘로 말하면 노후대책이 전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경건하고 의로운 부부에게 왜 이런 일이 있을까요?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사가랴가 평생에 한번 돌아올까 말까 한 직무를 맡아 성전 안에서 봉사하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 메시야 시대의 선구자가 될 아들이 그에게 태어날 것이란 기쁜 소식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한 번 반전이 있습니다. 경건하고 신앙심 깊은 사가랴가 천사가 전해준 소식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좋아서 아멘하고 당장 감사로 받을 일인 듯한데 말입니다. 결국 그는 천사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 대가로 아들이 태어나기까지 열 달 동안 침묵속에서 말씀을 품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왜 이렇게 누가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독자들을 이끌고 있을까요? 그것은 누가가 실제인물들의 살아있는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예상과 기대와 관습을 넘어, 그 모든 사건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며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이야기는 누가의 표현대로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필’(1:3) 가치가 있습니다.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자칫 '익숙함과 관습'이란 장벽에 막혀 누가가 그려주는 반전 있는 인물들과 사건들의 면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열고서 자세히 묻고 찬찬히 살펴볼 때, 우리의 예상과 기대를 뛰어넘는 살아계신 예수님,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 삶의 한복판으로 걸어들어올 것입니다.  모든 위대한 이야기가 그런 것처럼, 이 놀라운 이야기는 반드시 우리를 새로운 모험과 변화의 여정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배준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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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애가를 불러야 할 이유 아일랜드 출신의 락그룹 U2의 리더 보노(Bono)는 공공연하게 자신의 크리스천 신앙을 밝히지만, 한편으로는 교회에 대해 매우 비판적입니다. 특히 그는 그리스도인들의‘위선적’인 모습을 자주 비난합니다. 언젠가 보노가 신학자 유진 피터슨과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보노의 질문이, 왜 오늘날 교회가 부르는 노래들은 시편의 기도들처럼 진솔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시편에는 수많은 애가와 탄식과, 절망의 노래들이 가득한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애가를 찾아보기도 어렵고, 현실에 대한 치열하고 정직한 고민이 담긴 노래를 듣기 어렵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오늘 이사야서 말씀은 절망의 노래에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현실이 정의와 공의가 없어 캄캄한 암흑 속을 헤매는 것 같고, 사람들이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실제로는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고, 정직과 성실과 정의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의인이 도리어 손해를 보고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탄식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모두 어긋날 대로 어긋나 있습니다. 곰 같이 부르짖고 비둘기 같이 울면서 회복을 바라보지만 곪아져버린 내부에서 회복의 힘이 없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도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