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빛을 따라가라!

여호수아 1:1-18


16일은 교회력으로 주현절(Epiphany)이라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예수님이 온 세상의 빛으로 오셔서 하나님을 나타내 주심을 기념하는 날인데, 서방교회에서는 특히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예수님을 경배하러 갔던 일을 기념합니다. 이전에 한 교회의 주현절 배너에 “Pursue something greater... like the Magi”(동방박사들처럼 더 위대한 것을 추구하라!)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하나님의 말씀도 모르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도 모르는 이방인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처럼, 그저 자신의 욕심과 개인적 소망을 추구하며 살기 급급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이들입니다. 그런 동방박사들이 왜 굳이 메시야를 찾아 멀고 힘든 여행길에 나섰을까요? 그들이 생존과 안정의 욕구를 뛰어넘는 더 높고 위대한 것을 추구했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어떤 더 높은 목표를 품고 추구해야 할까요?

 

첫 번째는 말씀의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서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백성에게 전달해서 그들을 움직여 갑니다. 하나님이 이 백성과 함께 일어나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2)’고 하신 말씀대로 관리들에게 명령을 내려 양식을 준비하게 하고, 백성들이 사흘 안에 요단을 건너가도록 구체적으로 준비를 시킵니다(10-11).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은 말씀을 혼자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말씀의 능력은 공동체와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끼칠 때 비로소 나타납니다. 말씀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앞장서 섬기는 자리야말로, 말씀의 능력을 맛보고 테스트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새해에는 우리 성도님들이 모두 말씀을 유통시키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로 서시기 바랍니다. 그 목표를 품고 섬김의 자리, 리더의 자리로 찾아가셔서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을 풍성히 경험하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말씀으로 장애물을 돌파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이후 여호수아가 첫 번째 당면한 도전은 요단 동편 지파들을 가나안 정복전쟁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미 요단 동편 땅을 분배받고 정착했기 때문에 등 따습고 배부른 처지에 있습니다. 굳이 자기들의 이익과 관계없는 정복 전쟁에 선뜻 나설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배를 내민다면, 이스라엘의 전체 전력에도 큰 손실일 뿐 아니라, 자칫 이스라엘이 둘로 쪼개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는 여호수아의 리더쉽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통일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하고도 어려운 과제였습니다이 때, 여호수아는 신명기 3:18-20에 모세가 남긴 유언을 가지고 요단 동편 지파를 설득합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었던 사람이기에, 모세와 권위와 명령이라면 요단 동편 지파들도 꼼짝 못한다는 사실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가 어떻게 위기의 순간에 이런 지혜와 모략을 펼칠 수 있었을까요? 바로, 모세가 남긴 율법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했던 결과입니다.(1:8) 하나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었기 때문에, 위기의 순간 꼭 필요한 말씀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 말씀으로 쉽게 움직일 수 없는 마음의 장애물까지 돌파한 것입니다. 제아무리 여호수아라도 평소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훈련없이 하루아침에 이런 지혜와 전략을 펼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말씀 하루 이틀 거르거나, 한 두 주쯤 거른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까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지도했던 청년들을 보면, 말씀을 꾸준히 먹은 아이들은 당장은 큰 차이가 없는 거 같아도, 1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고 5, 10년이 지나면 엄청난 차이가 나타납니다. 눈빛도, 삶의 중심도, 인생의 역경을 헤쳐 가는 태도도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시험과 장애물도 돌파하는 능력이 있지만, 그 능력은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이 아니라, 끈기있는 순종과 꾸준한 실천이라는 쉽지 않은 과정을 통해 드러납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 앞에도 어려운 도전과 과제들이 산적해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저 사람들이 뭐가 달라지겠어, 현실은 끄떡도 하지 않을 거야 낙심되고 냉냉한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호수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상황이나 사람들의 마음도 뚫고 들어가서 변화시키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현실이 우리의 숨통을 죄고,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고 파묻혀 지낼 때에, 말씀의 빛을 따라 담대히 걸어감으로 어두운 현실을 돌파하고, 주님의 빛을 비추는 주님의 사람들, 우리 일원동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배준완 목사

 

20171231일 송구영신예배 메시지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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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애가를 불러야 할 이유 아일랜드 출신의 락그룹 U2의 리더 보노(Bono)는 공공연하게 자신의 크리스천 신앙을 밝히지만, 한편으로는 교회에 대해 매우 비판적입니다. 특히 그는 그리스도인들의‘위선적’인 모습을 자주 비난합니다. 언젠가 보노가 신학자 유진 피터슨과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보노의 질문이, 왜 오늘날 교회가 부르는 노래들은 시편의 기도들처럼 진솔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시편에는 수많은 애가와 탄식과, 절망의 노래들이 가득한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애가를 찾아보기도 어렵고, 현실에 대한 치열하고 정직한 고민이 담긴 노래를 듣기 어렵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오늘 이사야서 말씀은 절망의 노래에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현실이 정의와 공의가 없어 캄캄한 암흑 속을 헤매는 것 같고, 사람들이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실제로는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고, 정직과 성실과 정의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의인이 도리어 손해를 보고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탄식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모두 어긋날 대로 어긋나 있습니다. 곰 같이 부르짖고 비둘기 같이 울면서 회복을 바라보지만 곪아져버린 내부에서 회복의 힘이 없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도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