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유복한 삶인가

눅16:19-31


제가 아끼는 소중한 후배가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불신 가정에서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은 이 친구는 청소년 시절 선교사로 헌신했고, 성경번역 선교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명문대를 졸업하고 신대원에 입학했습니다. 신대원을 탁월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사역자로서도 워낙 유능해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던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박사과정 공부를 채 마치기도 전에 앓고 있던 지병으로 갑작스레 천국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소식을 듣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이러실 수 있나는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드렸던 아들을 뜻밖의 질병으로 고통 받게 하신 것으로 모자라, 꽃도 피우지 못한 채 데려가신 주님의 뜻을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후배의 장례식에서 주신 말씀이 부자와 나사로본문이었습니다. 큰 은혜와 깨달음을 그때야 얻었습니다. 부자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누리며 유복한삶을 살았지만, 그래서 주님을 의지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제 후배처럼, 나사로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기에 오직 주님만 의지했고, 주님의 복된 품에 안겼습니다. 후배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 떠난 것이 그렇게 마음 아팠는데, 주님이 그의 전부가 되셨기에 그를 통해 영광 받으셨구나 생각하니 깊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무엇이 진짜 유복한 삶이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길인가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사로처럼 아무것도 누리지도 남기지도 못한 인생이 복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세상적인 기준에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돈 걱정 없고,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자녀들 잘 키워서 해외여행 다니며 평안하고 풍요로운 노후를 보내는 삶을 유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오늘 본문의 대답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누리는 만족한삶 속에 하나님이 거하실 틈이 얼마나 될까요? 주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과 목마름이 없다면 어떻게 주님이 전부라는 믿음을 견지할 수 있겠습니까? 나사로가 복된 이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전부이신 주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유복한 삶을 부러워하기보다, ‘유일한 복이신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누가 진짜 유복한 사람인가는 천국에 가봐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QT묵상집 <복있는사람> 2018년 3-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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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일이 보상받지 못할 때 유명한 승려 분에게 한 청년이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신이 해외의 가난한 나라에 봉사를 하러갔는데 아무도 자기 수고를 알아주지 않고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람도 못 느끼고 허탈해서 돌아왔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저도 청년들로부터도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나 다문화가정 어린이 사역에 황금 같은 시간을 쪼개서 봉사하러 가면 종종 아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답니다.‘ 선생님, 여기 왜 왔어요? 봉사점수 따려고 왔죠?’ 아이들이 자기의 선의를 무시하는 거 같아 동기부여도 안 되고, 힘이 빠진다는 겁니다. 이런 질문에 그 스님은 뭐라고 답했을까요? ‘칭찬이나 감사와 같은 심리적 보상을 위해서 하는 봉사는 진정한 봉사가 아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답하실까요? 본문에서 예수님은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43절). 행동과 실천은 존재의 근원적인 상태, 즉 마음과 따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마음이야 어떻든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괜찮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행동은 사실 마음에서부터 흘러나옵니다. 문제는,